이 편견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

 









이 구조를 알았다고 해서

과거가
바뀌지는 않는다.

하지만
위치는
바뀐다.

부모도
그들만의 조건 속에 있었고,
그들 역시
선택하지 못한 세계에서
아이를 키웠다.

이 사실은
변명이 아니다.

출구다.

각성은
“부모를 용서해라”에서
시작하지 않는다.

각성은
나는
이 조건이 아니다라는
인식에서
시작된다.

나는
딸로 태어났다는 이유가 아니고,
몇째라는 이유가 아니고,
누군가의 기대를
채우기 위한
존재도 아니다.

이 구조를
보는 순간,
편견은
더 이상
나를 규정하지 못한다.

조건은
출발점이었을 뿐,
정체성은
아니다.

이 글이
가족 안에서

사랑받는 사람이 아니라,
늘 이해하고,
늘 희생해야 하는 사람으로
취급되어 온
딸들에게

위로가 되었으면 한다.

그건
네가 부족해서도,
네가 덜 소중해서도
아니었다.

그 집에서는
누군가는
늘 이해해야 했고,
누군가는
끝까지 참아야 했고,
누군가는
가족의 균형을
대신 떠받쳐야 했다.

그리고 그 역할은
가장 말이 없고,
가장 버틸 수 있어 보이는
사람에게
자연스럽게
돌아갔을 뿐이다.

그건
성격이 아니라
배치였고,

사랑이 아니라
구조였다.

하지만
이제는
다르다.

지금의 당신은
그 자리를
자각했고,

자각한 사람은
더 이상
자동으로
움직이지 않는다.

당신은
이제
그 역할에서
스스로
나올 수 있다.

그 자리는
당신의 것이 아니고,

지금의 당신은
그 자리에
남아 있을
이유가 없다.



흥부·놀부 관계 시리즈 09/12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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